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버트 피시 (문단 편집) == 생애 == 해밀턴 하워드 피쉬[* 앨버트 피쉬는 일종의 예명, 또는 네크로님(Necronym)이라 하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계승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자칭한 것이다. 본인은 본명인 해밀턴이라는 이름을 굉장히 싫어해서 어머니에게 들었던 사산된 형 앨버트의 이름을 자칭한 것.]는 1870년 5월 19일 [[워싱턴 D.C.]]에서 아버지 랜달 피쉬와 어머니 엘렌 피쉬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쉬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무려 75세였으며 어머니는 32세였지만 아이큐가 80대로 [[경계선 지능]]에 해당했다. 피쉬의 가족들은 정신병력이 있었는데 삼촌은 조증을 앓고 있었고 큰형인 월터는 정신병원에 보내졌으며 누나인 애니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피쉬가 5살 때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의 어머니는 막내인 피쉬를 세인트 존 고아원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거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할 것을 강요당하는 등 심각한 학대를 당했는데 언젠가부터 [[마조히즘|피쉬는 학대를 당하면서 성적인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고아원에서 2~3년을 지낸 후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가 생활하게 되는데 얼마 뒤 체리나무에서 떨어져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으며 이후 현기증과 두통을 경험했다. 이때의 사고가 그의 이상 성격을 형성하게 된 원인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특히 어린아이는 성인에 비해 두개골이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정도가 1/8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추락으로 전두엽 피질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의학계에서는 전두엽 피질이 손상되면 공격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단순 사디스트에서 잔혹한 살인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12살 때 전보 소년을 하던 한 청년과 사귀게 되었다. 문제는 이 청년이 심각한 변태라 피쉬에게 오줌을 마시는 행위와 대변을 조리해 먹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때부터 피쉬는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알버트 피쉬는 낮은 수준의 공교육을 받았고 페인트공이나 잡역부로 공사현장에서 일했다. 1896년에 19세의 여자와 결혼해 6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피쉬의 아내는 자기 집에서 하숙하던 잡역부와 바람이 나고 말았다. 피쉬는 아내에게 그 사내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자야 할 매트리스까지 가지고 사라졌다. 그 일 이후 피쉬는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 달빛 아래에서 알몸으로 '''"난 그리스도다!"'''라고 말하거나 생고기를 씹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아내 때문에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전에 이미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자학 행위는 점점 심해졌고 여자들에게 익명으로 성희롱 편지를 발송하거나 어린아이에게 강간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체포되어 교도소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악마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성은 남아 있었는지 후술될 그의 잔악 행위들을 자식들에게 하지는 않았다. 특히 피쉬의 자식들은 피쉬가 상냥한 아버지였다고 법정에서 증언할 정도였다. 다만 자신을 때려 달라고 부탁한 적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